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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왕릉 | 천마총 | 검총

미추왕릉(味鄒王陵)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大陵苑)안에 있으며, 사적 제175호이다. 미추왕릉은 지름이 56.7m. 높이가 12.4m로 대릉원입구에 들어서면 맨처음으로 맞이하는 왕릉이다.

미추왕은 경주김씨 시조인 김알지의 7대손으로서 최초로 왕위에 올랐으며 사후에 그의 능을 큰릉(大陵)이라 하였다. 왕릉은 황남동고분군 안에 있으며 외형은 단순 한 원형봉토분이다. 능앞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혼유석(魂遊石)과 상석(床石)이 마련되어 있고 남쪽에는 三門이 있으며, 이 三門을 따라 담장이 둘려져 보호되고 있다. 또 왕을 제사하기 위한 숭혜전(崇惠殿)이 있는데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1794년(정조18)에 다시 세웠다.

미추왕릉은 죽장릉(竹長陵),또는 죽현릉(竹現陵)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삼국사기}에 전하는 죽엽군(竹葉軍)에 얽힌 이야기에 기인하는 것이다. 무덤의 내부구조는 주변에 있는 천마총, 황남대총 등의 발굴조사에서 밝혀진 것과 같이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으로 추정되고 있다.

천마총(天馬塚)

황남동고분군의 발굴된 고분군중 유일하게 공개하고 있는 고분이 제155호분인 천마총이다. 1973년 발굴과정에서 부장품 가운데 말다래가 출토되었는데 말다래에 날개달린 말이 그려져 있어 천마총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말다래란 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말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는 마구를 말한다.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는 자작나무껍질을 여러겹 겹쳐 누벼서 만든 것이며 국보 207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마총은 바닥의 지름이 지름이 47m, 높이가 12.7m인 원형봉토분이며, 내부구조는 적석목곽분이다.

천마총의 축조양식은 먼저 땅을 잘 고른 다음 바닥위에 진흙을 깔고 진흙층 위에 다시 냇돌을 깔았다. 그리고 냇돌층위에 다시 목곽을 설치했다. 목곽내부에 부장품을 넣은 궤와 시체를 넣은 목곽을 수직되게 안치했다. 목곽위를 다시 냇돌로써 쌓아 덮었으며, 그 냇돌층을 다시 진흙으로 발라 다졌다. 마지막으로 이 위에 흙을 쌓아 봉분으로 하였다.

천마총은 5세기말에서 6세기초에 축조된 고분으로 추정되는데,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천마도 말아래를 위시하여 금관, 금모자, 새날개모양 관식, 금허리띠, 금동으로 된 신발 등이 피장자가 착용한 그대로 출토되었다. 특히 천마총금관은 지금까지 출토된 금관중 가장크고 화려한 것이다.

천마총 금관은 다른 금관에 비해 금판이 두껍다. 금관의 앞면에는 4단으로 된 출자모양의 장식이 3줄있고, 뒷면에는 사슴뿔 모양의 장식이 2줄 있다. 그리고 출자 모양의 장식에는 곡옥이 13개씩 달려있고, 사슴뿔 모양의 장식에는 곡옥이 5개 달려있다.

현재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은 경주민속공예촌에서 삼선방을 운영하셨던 김인태선생께서 제작하신 것이며, 진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피장자의 주인공에 대하여는 제20대 자비왕, 제21대 소지왕 또는 제22대 지증왕이라는 설이있다.

검총(劍塚)

대릉원내 미추왕릉에서 천마총으로 가는 소로길을 따라 가다보면 세갈래의 길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봉분자락에 대나무가 많은 고분을 바로 만난다. 아무런 안내표시도없는 이 고분은 신라고분들 중 최초로 학술적 조사가 실시된 것으로, 1916년 세키노(關野貞) 등이 발굴하였을 때 이 곳에서 철검(鐵劍)이 출토되어 검총(劍塚)이라고 명명되었다. 현재까지도 황남동고분군